책이 너무 많아 하루한조각 '▽'

휴일을 맞아 또,
정리를 하고 있다.

항상 어질러져 있는 공간. 과연 내 인생에서 잠자는 시간과 정리 시간을 빼면 남는 시간은 얼마 정도일지 궁금해진다. 문득 '사실은 엄청나게 효율이 좋은 인간이 아닐까'하는 자신감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치우고, 자는 데다 쓰는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어질러진 더미 중에 책이 너무 많다. 집이 도서관이야! 정도는 아니지만 버릴 줄 모르는 탓에 계속 모아만 와서 자연스레 많아졌다(유루리 마이의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를 아무리 정독해 봐야 소용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일까. 어쩐지 슬프다). 얼마 전에는 급기야 사카이 준코라는 일본 글쟁이의 <책이 너무 많아>라는 책까지 가져왔다. 집에 온 사람이 책 제목을 보고 웃었다. 웃기지? 나도 웃겨.

정리하다 보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들이 있다. 손때도 묻고, 라면 국물도 묻고, 정도 잔뜩 묻어 있다. (주로 대학 시절) 교과서가 있다. 단 한 번만 정독한 책들이 있다. 이 책들 가운데는 정독은 한 차례만 했지만 꾸준히 레퍼런스로 쓰이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한 번 읽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은 책들이 있다.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필요할 때마다 몇 단락을 읽어보게 되는 책들도 있다. 그리고 뭔가 마음이 동해서 사거나, 얻어 왔지만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들이 있다.

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세상에는 책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서가에 있는 몇 권 안되는 책들도 감당이 안 되는데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을 합치면 그 양이 얼마나 많을까.

<책이 너무 많아>는 에세이 모음집이다. '안 읽었습니다'라는 단편을 보면 이런 불안감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도심에 있는 큰 서점에 들어갔더니 '정말이지 책이 많아도 너무 많은 거 아니야!'라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부인인 듯한 여성이 '서점이니까 당연하잖아요'라고 한마디 한다. - <책이 너무 많아>, p.190

작업실에 쌓인 책을 바라본다. 직접 골라 샀으니 재미있는 책뿐이지만 나는 전혀 읽지 않고 있다.
책이나 잡지를 보면 글을 쓰거나 코멘트를 날리는 이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의 말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을 것 같은 사람투성이다. 서점에 가면 '이렇게 책이 있다면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라는 기분이 엄습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어도 내 콤플렉스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책 같은 거 전혀 읽지 않는데요?'라는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상쾌해지는데 (후략) p.192

이런 기분이다. (치우다 지쳐서) 책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부질없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잠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주 재밌는 책을 써야지' 였다. 재미가 없거나 그저 그런 정도로 재밌는 책을 쓰면 그렇잖아도 많은 책 세상에 쓰레기를 하나 추가하는 셈이 되니까, 정말 재밌게 써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여기에도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하나는 그 정도로 '정말 재미있는' 글을 쓰기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글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담기도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어찌어찌 기적적으로 그런 책을 썼다고 해도, '재미있는 책'도 이미 세상에 엄청나게 많을 거라는 생각.

따져 보면 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음악, 그림, 만화... 각종 콘텐츠는 차고 넘치는데 사람들은 계속 만들어낸다. 광의의 콘텐츠 창작자들은 얼마나 자주 좌절감에 빠지는 것일까. 내가 뭘 만들어 봤자... 이 콘텐츠 산맥에 고사리 하나 심는 것 뿐인데... 하고.

믿는다는 것 하루한조각 '▽'

사기의 '자객열전'에 이런 말이 실려 있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뜻은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무척 좋아하는 말이다. 성적으로 평등한 표현이 아니긴 하지만….

송사에 나오는 '의인불용(疑人不用) 용인불의(用人不疑)'라는 말도 좋다. '믿지 못하겠으면 쓰지 말고, 쓰면 믿어라'.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또 내가 믿지 못해서 괴로워하던 어느 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10년지기 학부 친구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대화 주제는 '믿는다는 것은 대체 뭘까'. 한참 얘기하던 중 그가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 'XX야,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믿을 만해서, 돌려받을 수 있어서, 배신당하지 않을 것 같아서 믿는 게 아니라 네가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마음으로 믿어 주는거다.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이다. 친구든, 사업이든, 연인이든 모두에게 통하는 거다.' 맨날 얘기하셨어. 심지어 초등학교 때 일요일 아침에 같이 마라톤할 때도 얘기하셨어."

친구는 "덕분에 아들이 호구로 자라났다"며 농담을 했지만, 진심으로 그의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친구가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던 14년 전에 뵌 적이 있다. 그때 친구의 병상 앞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드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렇잖아도 그 소탈한 이미지 덕분에 가식이 없는 분으로 여기고 있었다.

특정 종교의 경전에 '좁쌀만한 믿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어린 시절 그 말을 처음 듣고 그렇게 어색하고 웃길 수 없었다. 좁쌀만하다는 건 엄청 작다는 거다. 그 정도 크기의 믿음을 가지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데 '신뢰'의 속성을 곰곰이 뜯어보다 보면 결코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매 순간 제시되는 근거를 바탕으로 믿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믿음이 아니라 추론이다. 신뢰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일단 믿기로 결정한 대상에 대해, 적어도 특정 시점까지(이 시점은 아마 상황에 따라 다를 텐데, '죽을 때까지'일 수도 있고 어떠한 '선을 넘기 전까지'일 수도 있겠다)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행위를 말하는 듯하다. 

그걸 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연인을 믿지 못해 메신저를 몰래 훔쳐볼 정도인데도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 벤처기업을 차렸는데 직원들을 믿지 못해 혼자서 끙끙 앓는 대표. 나도 불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불신지옥'이라고 하는 건가.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아무런 근거 없이 신뢰로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하는 때인 것이다. 보이는 척(믿는 척)만 해도 곤란하다. 정말로 봐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산과 들, 냇가와 푸른 하늘, 그리고 뭉게구름까지 봐야 하는 시간이 있다.  


6년 반 만에 남친이 생겼습니다 만화

6년 반 만에 남친이 생겼습니다 - 드디어 만난 소중한 상대

성별이 남자인 친구 A는 20대 초반 첫 연애를 했다. CC였다. 미모의 여자친구는 성실하고 착했다. A도, 여자친구도 서로 아끼며 예쁜 사랑을 가꿔 나갔다. 하지만 A가 군대에 가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용투사'라 자주 밖에 나왔지만 'OOSOOM'이라고, 여자친구는 조금씩 그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어느날 그가 외박을 나왔을 때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했다. A는 '일단 오늘은 집에 보내고, 조금씩 마음을 되돌려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공교롭게 그가 복귀하자마자 부대에 사건이 터졌다. 자살자가 나온 것이다. A는 한 달간 밖에 나오지도, 연락도 못 했다. 일이 마무리됐을 땐 이미 되돌리기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2년간 쌓아 온 사랑은 그렇게 과거 일이 됐다. 여자친구는 얼마 후 다른 사람과 사귀기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A는 여자친구를 잊을 수가 없었다. 2년간은 여자친구가 꿈에 자주 나왔다. 4년쯤 지나자 조금 희미해진 느낌이 들었다. 5년째부터는 일상생활을 할 때 생각이 나지 않게 됐다. 그리고 6년이 지났을 때, 소개팅을 했다. 그는 몇 차례 소개팅 끝에 마음이 맞는 상대를 만나 '두 번째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지금 그는 간만에 찾아온 사랑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것은 전부 (A의 허락을 득해 적는) 실화다. 2004년 이래 12년간 한 번도 남자친구(일부 관계는 연인 관계가 아니었므로)가 없었던 적이 없었던, 성별이 여자인 다른 친구 B가 A에게 물어봤다. "기분이 어때?" "너무 행복해. 너무 소중해." A는 지금 여자친구에게 진짜 잘하고 있다. 그의 여자친구는 팔불출처럼 "내 남자친구가 최고!"라는 말을 A의 친구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하고 다닌다.

기다림 끝에 찾아낸 상대의 소중함.

이별한 사람들에게 흔히 건네는 조언은 "사랑은 사랑으로 잊으라"는 것. B는 그 조언을 충실히 따르는 타입이다. 너무 충실히 따른 나머지 기간이 종종 겹치기까지 한다. B는 도무지 외로운 것을 견디지 못한다. N번째 남자친구가 소홀한 기미가 보이면 (N+1)번째 남자를 만든다. Nth 남친이 다시 그녀를 잘 붙잡으면 그녀는 (N+1)th 남자를 정리하고, 그렇지 못하면 (N+1)th 남친을 만드는 식으로 어수선한 연애를 해왔다(B가 악마는 아니다. 그녀의 남자들에게는 악몽이었겠지만).

B가 문득 A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다. "정말 좋아보여. 난 저렇게 전심전력으로 사랑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연애를 함에 있어서 특정한 방식이 가장 좋다고 말하긴 어려울 터다. 하지만 A의 모습을 지켜보면, 그리고 B의 씁쓸한 독백을 들으면 기다림도 고생스럽기만 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6년 반 만에 남친이 생겼습니다》는 제목에도 드러나 있듯 그런 '기다림'에 관한 책이다.

"남친과 함께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다녀와서 좋았어!"가 아니라 "나에게도 이제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있어"다.
"남친과 끝내주는 섹스를 했어~"가 아니라 "알몸으로 끌어안는 건 역시 기분 좋구나"다.

6년 반만에 남자친구가 생긴 29살(책 속에서 30살 생일을 맞는다) 미야타 나츠코의 마음 상태는 무척 간절하다. 상대방의 작은 친절에도 감동하고, 사소한 틀어짐에도 괴로워한다. 그 '어리고 유치한' 모습이 정감어리고 귀엽다.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의 33살(한국 나이로는 아마 34세나 35세일 것) '처녀' 아오이시 하나에의 좌충우돌을 보며 아사오 씨가 "서른 넘은 여자가 처음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는 건 재밌어-"(정확한 워딩은 아님)라며 웃었던 것도 이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 같다. 나이와 관계없이 경험이 적으면 역치가 낮기 마련이다.

미야타가 남자친구에게 저자세를 취하는 점이 살짝 거슬린다. 남자친구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여주인공이 상당수의 일본만화에서 관찰되는 만큼, 꼭 간만에 연애를 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 속에서 결코 얼굴이 나오지 않는 남자친구가 미야타를 덜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슬프다. 사귀고 나서 여자친구가 처음 맞는 생일인데, 게다가 서른 살 생일인데 날이 지나고 나서야 전화를 하다니. 미야타의 성격이 소심한 것도 옥의 티다. 이 여자는 웬 짜증이 이리 많아….  

어쨌든 두 사람의 사랑은 훈훈하게 결실을 맺는다. 맨 마지막 두 에피소드가 사랑스러운 대미를 장식한다. 아픈 미야타를 간호하러 온 남자친구의 이야기와, 그리고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결말(스포를 한 것 같지만 이 만화는 제목부터가 아침드라마처럼 알고 보는 장르 같아서).
 
정말이지, 기다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만화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린다. 필요한 물건도 버린다.

요가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엊그제 구입한 요가복에 회원 할인이 적용되지 않았다며, 학원에 올 때 '결제한 카드'를 다시 갖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카드를 가지고 갔다. "결제한 카드 가져오셨어요?" "아뇨. 다음에 가져올게요." "네, 잊지 말고 꼭 가져오세요."

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카드를 찾을 수 없었을 뿐이다. 잃어버렸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카드는 분명히 '내 방 안에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방 안에서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제일 정확하다. 방바닥은 책들, 입고 벗어놓은 옷들과 머리핀, '올해는 그림을 제대로 그려보기 위해' 산 수채화 도구, 볼펜 등으로 가득 덮여 있다. 그 위를 고양이들이 사뿐히 걸어다니며 고양이 모래를 토핑처럼 뿌려 놓는다.

도대체가, 이 방은 너무 더럽다.

어릴 적부터 뼈에 사무칠 정도로 잘 알고 있지만, 치우기는 쉽지 않다. 일단 책이 너무 많다. 남들보다 책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도 버리지 않고 있다. 예전에 봤던 책에 한번 본 책, 자주 보는 책, 언젠가 볼 것 같은 책이 뒤섞여 아무데나 쌓여 있다. 자꾸만 얻어 오는 신간들 덕에 이 무더기는 자꾸 커지기만 할 뿐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가운데는 고양이들이 가끔 가서 잠을 청하는 옷 동산이 있다. 나는 평생 이런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일까. 예전엔 새해가 되면 치우는 척이라도 했는데 올해부터는 그마저도 그만뒀다.

비슷한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모세가 십계를 받을 때의 느낌이 이랬을까.
"깨끗하게 삽시다" 하고 단순히 광고하는 만화가 아니다.
뭐든 버릴 수밖에 없는 정리중독자의 일상을 고백한 수기라는 점에서
《알코올 중독 원더랜드》와 맥이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 유루리 마이는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센다이 출신. 어린 시절 그녀가 살던 집은 아주 낡고 오래된 데다 선조들의 물건까지 수북이 쌓여 있어 비좁기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가족들은 하나같이 물건 정리를 싫어하는 타입. 엄마는 "얘, 이것 좀 치워라"고 외치고 딸은 "쫌만 있다가!"를 부르짖는 가정의 풍경에 익숙하다면 좀 낯선 구도다. 유루리 마이가 할머니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자고 말하자 할머니는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리려고만 하고 물건의 소중함을 모른단 말이야!"며 일갈한다.

이런 집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지만, 자기 방을 정리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유루리 마이. 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동일본 대지진이 와서 집이 무너진 것이다. 이 기회에 본격 정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그녀는 할머니, 엄마, 곧 남편이 될 남자친구와 허물어진 집을 재건하며 버리기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다.

새 집으로 이사한 다음 장면부터 이 책은 점점 비범해지기 시작한다. 유루리 마이는 불필요한 물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다가, 어느 순간 한 단계 도약해서 필요한 물건까지 버리게 된다. 물건과의 대화(…)를 통해 정말 있어야 하는 것인지 재차 점검하고, 한 가지 물건을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등 '발상의 전환'을 통해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줄여 나간다. 이 책이 나온 뒤 그렸던 원고를 모두 버린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남편과 연애할 때 끼던 커플반지도 결혼반지 받는 날 바로 버렸다. 불쌍한 남편은 처음 얼마간 믿지 않았다고 한다.

'폐기 중독'에 걸린 그녀의 집을 본 사람은 "우와! 대박! 모델하우스 같아, 너무 깨끗해!"하는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고 "…미안. 없어도 너무 없어서 속이…"라며 울렁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책 뒤에 사진이 나오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다'. 레지던스를 가도 마이 상의 집보다는 뭐가 있어 보일 정도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메시지는 18페이지의 대사에 요약돼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의 청소법: 오른쪽에 있던 것을 왼쪽으로 옮겨놓고는 그걸 치운 거라고 착각했다."

그렇다. 뭔가를 치운다는 것은 곧 버리는 것이다.

유루리 마이네 집 거실 (출처는 유루리 마이의 '아무것도 없는 블로그')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새책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 우리 모두 반드시 늙는다. 그 전에 죽지만 않는다면

진시황을 비롯한 숱한 이들이 불로장생을 꿈꿨지만, '불로'는 불가능하고, '장생'은 괴로운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무전장수(無錢長壽)' 시대다. 살 날이 한참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장생'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즐거움보다 막막함이나 좌절감에 더 가깝다.

다 같이 돈 없이 늙어가는 마당에 외모까지 걱정해야 하는 '여자'는 더 막막하다. 이놈의 사회는 쉴 새 없이 여자에게 '예뻐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외모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이에게는 '예뻐지세요',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 이에게는 '더 예뻐지세요'. 상당히 만족하는 이에게도 '유지하라. 유지가 쉬운 줄 아느냐'는 차가운 소리를 한다.

어찌 보면 뻔한 제목의,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원제: French women don't get facelifts)를 집어든 건 나 역시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듯하다. 막막한 미래와 막막하게 변할 내 외모가 부지불식간에 두려웠나보다. 첫 장을 펼치면 코코 샤넬의 그럴싸한 말이 적혀 있다. "마흔이 넘으면 그 누구도 젊지 않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

표지 편집이 이쁘다. 연분홍색과 흑백사진이 잘 어울림.

저자 미레유 길리아노(Mireille Guiliano)의 생일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46년 4월 14일. 한국 나이로 일흔이 넘었다. 작년에 쓴 책이 올해 1월에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70살이 넘은 사람이 노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30~40대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신뢰감이 간다. 한창 노화를 치열하게 겪는 중이라서다. 노화와 죽음을 '상상'하고 쓴 것보다 현실감이 있다.

프롤로그 두 번째 페이지부터 미국 문화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미국은 모든 일이 젊은 층 위주로 돌아가고 결과에 집착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나이 먹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p.12) 성형 중독에 빠진 아시아 지역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통계치를 보면 아시아인들이 성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p.15) 타 문화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프랑스 문화 예찬으로 흐른다. "프랑스 여성 역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지만 미국 여성처럼 주름을 없애려고 얼굴에 칼을 대지는 않는다." (p.14) 하지만 기승전 '프랑스 찬양'이 그렇게 짜증나지는 않는다. 굳이 분류하자면 귀여운 쪽.  

프랑스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을 '프랑스 여자'라는, 뭉뚱그려진 정체불명의 한 인격으로 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의인화된 이 '프랑스 여자'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확실히 매력적일 것 같다. 길리아노의 말대로라면 '프랑스 여자'는 다음과 같은 엄청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자연스러운 외모와 분위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영양크림과 스크럽제를 많이 사용하고, 얼굴에 칼을 대기보다는 음식과 화장품에 신경을 쓴다. (p.14)
- 고등학교 때부터 루소와 데카르트를 인용할 줄 알고, 요리부터 최신 정치 스캔들까지 어떤 주제를 놓고도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다. (p.23)
- 40대나 50대에도 뭇 남성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정도로 매혹적이지만 풋풋한 청춘인 척 행동하지 않는다. (p.22)

척 노리스 시리즈의 변주 같지만 느낌 탓이겠지
 
책의 메시지는 명쾌하다. '프랑스 여자'처럼 사는 것은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나이에 따른 매력을 무리하지 않게 가꾸는 일이다. 긍정적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고, 세부적인 팁으로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법 △안티에이징 식품 고르는 법 △휴식을 잘 취하는 법 △꾸준히 운동하는 법 △스타일리쉬하게 외모를 가꾸는 법 △피부관리하는 법 △의미있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법 등이 잇따라 소개된다.

지극히 당연해서 책을 통해 전달할 필요가 없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음'을 숭상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몸에 칼을 대서라도 동안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동안이 유지되는 동안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 한다(모두들, 드라마 속에 나오는 30대 재벌가 출신 '실장님'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일까). 그러는 동안 정신은 계속 혹사당해 너덜너덜해진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지 않고 싶은 건 당연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누구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독은 괴로울 듯하고, 정독할 생각도 없음.

어른이 됐다는 말은 철이 들었다는 뜻이다. 철이 들었다는 말은 중력 때문에 피부가 늘어진다는 따위의 쓸데없는 걱정을 덜 한다는 뜻이다. (p.23)

"나는 여유 있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허비하며 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p.172)  → 프랑수아즈 사강. 사강이 할 법한 말이다.


이 귀여운 여자는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 계열사의 샴페인 브랜드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CEO를 역임했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노화도 아무나 영위할 수 없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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